SEC 레귤레이션 크립토 자산 제안은 암호화폐 공모 방식과 트랜스퍼 에이전트 인프라까지 함께 바꾸는 규제의 새로운 전환점입니다.
2026년 8월 18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암호자산 투자계약에 특화된 최초의 공모 규제안인 레귤레이션 크립토 자산(Regulation Crypto Assets)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 제안은 SEC 위원장 폴 앳킨스가 추진해온 ‘프로젝트 크립토’ 이니셔티브의 핵심 성과물이자, 2026년 3월 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공동으로 발표했던 암호자산 해석 지침의 후속 조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울러 같은 해 9월 1일에는 트랜스퍼 에이전트 규칙 개정안까지 발표되면서, 암호화폐 발행부터 유통 인프라까지 아우르는 규제 정비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글에서는 두 제안의 핵심 내용과 실무적 의미, 그리고 업계와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지점을 정리해보겠습니다.
SEC 레귤레이션 크립토 자산이 등장한 배경
기존 증권 규제는 주식이나 채권 같은 전통적 금융상품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에, 암호자산처럼 초기에는 투자계약의 성격을 띠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성격이 사라지는 독특한 자산에는 잘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발행사들이 미국 내에서의 규제 불확실성을 피해 해외로 프로젝트를 이전하거나, 아예 규정 준수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가 이어져 왔습니다. 의회에서 논의 중인 디지털자산시장 명확화법(CLARITY Act)이 하원을 통과하고도 상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지연되는 사이, SEC는 크립토 태스크포스와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시장 워킹그룹의 논의를 바탕으로 자체적인 행정 규칙 제정에 나선 것입니다.
이번 제안이 적용되는 대상은 ‘적용대상 투자계약(Covered Investment Contract)’으로, 암호자산이 투자계약의 대상이면서 그 자산 자체는 증권이 아니고, 해당 계약에 다른 자산이 섞여 있지 않은 경우로 한정됩니다. 다시 말해 토큰화된 주식이나 여러 자산이 혼합된 상품, 그리고 실물자산을 토큰화한 RWA는 이번 규정의 적용 범위 밖에 있습니다. 순수하게 새로운 암호자산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프로젝트를 겨냥한 규정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스타트업 면제로 열리는 초기 자금조달의 길
스타트업 면제는 초기 단계 프로젝트를 위한 일회성 면제 제도로, 4년이라는 기간 동안 최대 500만 달러까지 등록 절차 없이 자금을 모을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이 트랙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발행사가 반드시 미국 법인일 필요가 없다는 점으로, 개인이나 비공식적인 개발팀도 이용할 수 있어 초기 단계 프로젝트에 상당히 우호적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용을 위해서는 SEC의 전자공시시스템에 신고서(Form NOR)를 제출하고, 웹사이트를 통해 원칙 중심의 서술형 공시를 무료로 공개해야 합니다. 감사받은 재무제표는 요구되지 않으며,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광고와 비인증투자자에 대한 판매도 허용됩니다. 또한 발행된 토큰은 재판매 제한을 받지 않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거래될 수 있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이 면제가 커버하는 거래의 범위가 단순한 판매를 넘어 에어드랍, 스테이킹이나 거버넌스 관련 배분, 네트워크 활성화를 위한 가스비 지급까지 포함한다는 점으로, 기여에 대한 대가로 지급되는 에어드랍은 공정가치로 환산되어 500만 달러 한도에 포함됩니다. 다만 같은 자산 또는 실질적으로 동일한 자산에 대해서는 발행사와 그 계열사가 딱 한 번만 이 면제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이 면제는 신고서를 EDGAR에 제출한 이후의 거래만 보호하기 때문에, 그 이전에 이미 프로젝트를 공개적으로 홍보한 이력이 있다면 해당 커뮤니케이션이 면제 범위 밖의 ‘청약’으로 간주되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미 마케팅을 진행해온 프로젝트라면 과거 커뮤니케이션의 법적 노출 가능성을 사전에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금조달 면제와 성장 단계 프로젝트의 선택지
자금조달 면제는 기존의 레귤레이션 에이(Regulation A)를 모델로 삼아 설계된 두 단계 구조입니다. 첫 번째 단계는 12개월 동안 최대 2천만 달러까지, 두 번째 단계는 같은 기간 동안 최대 7,500만 달러까지 자금을 모을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두 번째 단계로 갈수록 요구되는 절차도 늘어나는데, 감사받은 재무제표 제출과 함께 연차, 반기, 수시 보고서 등 지속적인 보고 의무가 부과됩니다.
스타트업 면제와 달리 이 트랙은 발행사 자격 요건이 훨씬 까다롭습니다. 미국에서 설립된 법인이어야 하고, 임원이나 이사 과반수가 미국 시민 또는 거주자여야 하며, 자산의 절반 이상이 미국 내에 있고, 사업이 주로 미국에서 운영되어야 합니다. 백지수표회사나 등록된 투자회사, 과거 특정 제재 이력이 있는 발행사는 제외됩니다. 비인증투자자의 경우 연소득이나 순자산 중 더 큰 금액의 10퍼센트 이내에서만 투자할 수 있다는 한도가 적용됩니다. 청약서 제출 이후 SEC의 심사와 승인 절차를 거쳐야 판매를 시작할 수 있지만,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투자자 관심을 타진하는 사전 커뮤니케이션은 허용됩니다.
두 면제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아서, 초기에는 스타트업 면제로 시작한 뒤 제품이 검증되면 자금조달 면제로 규모를 키워가는 방식의 순차적 활용도 가능하다는 점이 실무적으로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투자계약 안전항, 증권 규제로부터의 출구
이번 제안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꼽히는 것이 투자계약 안전항입니다. 암호자산이 처음 발행될 때는 투자계약의 대상으로서 증권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지만, 발행사가 백서 등에서 약속했던 필수적 관리 노력을 모두 완료하거나 영구히 중단하고 더 이상 새로운 약속을 하지 않는다면, 전환보고서(Form TR)를 제출함으로써 그 투자계약이 소멸했다는 것을 SEC에 알릴 수 있습니다. 조건이 충족되면 해당 암호자산은 더 이상 그 투자계약과 관련해서는 증권으로 취급되지 않고, 온전한 상품(commodity)으로서의 지위를 갖게 됩니다.
이 안전항이 의미 있는 이유는 기존 대법원 판례인 하위 테스트(Howey Test)의 한계 때문입니다. 하위 테스트는 투자자들이 발행사의 관리 노력에 기반한 수익 기대를 더 이상 하지 않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데, 이는 결국 투자자 개개인의 마음속 기대에 달린 문제라 실제로 판단하기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SEC가 과거에 제시했던 ‘탈중앙화’ 개념 역시 어떤 개인이나 단체도 운영, 경제, 투표에 대한 통제권을 갖지 않는 완전히 자율적인 상태를 요구했기 때문에 현실에서 달성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이번 안전항은 완벽한 탈중앙화 증명 대신, 약속한 관리 노력을 완료했거나 중단했다는 훨씬 명확하고 검증 가능한 기준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한계도 분명합니다. 이 안전항은 SEC의 법 집행 판단에만 구속력을 가질 뿐, 개인 투자자의 민사 소송이나 주법에 따른 별도의 증권성 주장까지 막아주지는 않습니다. 또한 발행사가 전환보고서를 제출한 이후에도 SEC가 그 판단이 타당했는지를 나중에 다시 문제 삼을 수 있는 여지도 남아 있습니다. 안전항은 스타트업 면제나 자금조달 면제를 이용했는지와 무관하게 어떤 발행사든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알아두시면 좋겠습니다.
주법 적용 배제와 적격투자자 정의
이번 제안은 ‘적격투자자(Qualified Purchaser)’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의해, 스타트업 면제나 자금조달 면제에 따라 이루어진 공모와 판매가 주(state) 차원의 증권 등록 및 인가 요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면제는 최초 발행뿐 아니라, 발행사가 관련 공시와 보고 의무를 계속 준수하는 한 일부 2차 시장 거래에도 적용됩니다. 미국은 각 주마다 서로 다른 증권 규제 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그동안 사업자들은 여러 주의 라이선스 요건을 개별적으로 충족해야 하는 상당한 비용 부담을 안고 있었습니다. 이 조항이 실현되면 전국 단위의 유통 시장을 여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업자 입장에서는 매우 실질적인 유인책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법령이 아닌 행정규칙으로 주(state)의 권한을 면제하는 방식이 과도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해석상의 논란도 함께 제기되고 있어, 10월 20일까지 진행되는 의견수렴 과정에서 이 부분의 내용이 상당히 바뀔 가능성도 있습니다.
트랜스퍼 에이전트 규칙 개정과 블록체인 인프라의 만남
레귤레이션 크립토 자산이 암호자산의 ‘발행’ 측면을 다룬다면, 같은 해 9월 1일 발표된 트랜스퍼 에이전트 규칙 개정안은 증권의 ‘소유권 기록과 이전 관리’라는 인프라 측면을 다룹니다. 트랜스퍼 에이전트는 누가 어떤 증권을 소유하고 있는지 공식 기록을 유지하고 소유권 변경을 처리하는, 증권 시장의 뒷단 장부 관리자 역할을 하는 기관입니다. 이 규칙은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 이후 실질적인 개편이 이루어진 적이 없었는데, 이번 제안을 통해 전자통신, 디지털 기록관리, 토큰화 증권, 분산원장기술을 명시적으로 반영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트랜스퍼 에이전트가 공식 주주명부 안에서 분산원장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다만 주주명부 자체가 여전히 등록된 소유자에 대한 공식 기록이며, 블록체인에 기록되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법적 지위를 얻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두고 있습니다. 아울러 트랜스퍼 에이전트는 자신이 관리하는 토큰화 증권의 규모와 이를 뒷받침하는 블록체인 플랫폼이 무엇인지를 SEC에 보고해야 하는 새로운 의무를 지게 됩니다. 뉴욕증권거래소와 Securitize의 협력, tZERO와 인터콘티넨탈 익스체인지의 토큰화 증권 인프라 구축 협약 등 이미 시장에서 진행 중인 움직임을 고려하면, 이번 규칙 개정은 현실의 흐름을 뒤따라가며 법적 근거를 마련해주는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암호화폐 업계가 제안에 주목하는 이유
암호화폐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제안을 단순한 규제 완화 이상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2022년 FTX 파산 이후 암호화폐 업계가 양질의 신규 자산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사실상 상실했고, 현재 시가총액 상위권 자산들은 대부분 그 이전에 만들어진 것들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규제 불확실성으로 인해 미국 내 합법적인 자금조달 경로가 막히면서 신규 프로젝트들이 해외로 이전하거나 규정 준수 자체를 포기해온 흐름 속에서, 이번 제안이 최소한 제도적 차원에서 신규 자산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문을 여는 시도라는 평가입니다. 동시에 실물자산 토큰화가 온체인 거래 성장의 주된 동력이 되어가는 현상을 두고, 이것이 진짜 새로운 자산을 만드는 능력의 고갈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함께 제기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레귤레이션 디(Regulation D) 방식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토큰의 ‘사용자’와 ‘투자자’가 분리되지 않는 구조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전문투자자만을 대상으로 한 기존 방식에서는 투자자의 자금 회수 시점에 토큰 가격이 급락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지만, 이번 제안은 토큰 보유자가 곧 서비스 이용자가 되는 생태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이러한 변화의 직접적인 수혜 주체로는 새로운 프로토콜을 준비하는 신규 프로젝트, 이들이 상장되고 유통될 거래소, 모금된 자금을 맡아줄 미국 내 수탁기업, 그리고 자체 블록체인을 운영하며 토큰 발행을 검토할 수 있는 대형 플랫폼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SEC 레귤레이션 크립토 자산 현실적인 고려사항
법률 전문가들은 이번 제안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관련 업계가 미리 검토해야 할 지점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진행 중이거나 계획 중인 공모가 적용대상 투자계약의 범위에 들어가는지, 스타트업 면제와 자금조달 면제 중 어느 쪽이 자사의 자금조달 규모와 일정에 적합한지, 공시와 재무제표, 감사 의무를 어떻게 준비할지, 그리고 안전항의 조건을 실제로 충족할 수 있을지가 대표적인 검토 항목입니다. 특히 백서를 작성하는 초기 단계부터 향후 관리 노력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완료 또는 중단할 것인지에 대한 출구 전략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 새롭게 강조되고 있습니다.
부적격자 조항과 관련해서는 규칙 시행일 이전의 이력이 자동으로 발행사를 실격시키지는 않지만, 그런 이력이 있다면 판매 전에 각 투자자에게 서면으로 반드시 고지해야 한다는 세부 규정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이번 제안은 어디까지나 초안 단계로, 공개된 의견 요청 항목만 150개가 넘는 만큼 최종 확정되는 규칙은 지금과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국가들이 참고할 지점
미국의 이번 움직임은 다른 나라의 규제 논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영국 금융행위감독청은 암호화폐 거래 플랫폼과 커스터디, 스테이블코인 등을 포괄하는 종합 규칙을 이미 확정해 2027년 10월 시행을 앞두고 있고, 유럽연합은 기존 MiCA 규정이 여전히 목적에 부합하는지를 검토하는 절차를 진행 중입니다. 국제결제은행과 영국 정부가 스테이블코인의 미래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는 모습도 관찰되고 있어, 암호화폐 확산이 기술보다는 규제에 의해 좌우되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비증권 암호자산 발행에 대한 별도의 법적 근거가 아직 명확하게 자리 잡지 못한 국가 입장에서는, 이번 미국의 상세한 규정 설계를 하나의 참고 사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다만 투자계약이라는 개념 자체가 각국의 증권 규제 체계와는 다른 미국 고유의 법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틀을 그대로 이식하기보다는 각국의 법체계에 맞게 방향성을 참고하는 접근이 더 현실적이라는 지적도 함께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지켜봐야 할 일정
SEC 레귤레이션 크립토 자산에 대한 공개 의견 수렴은 2026년 10월 20일까지 진행됩니다. 이 기간 동안 제출되는 의견에 따라 최종 규칙의 세부 내용, 특히 주법 적용 배제나 안전항의 구체적 조건과 관련된 조항은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트랜스퍼 에이전트 규칙 개정안 역시 연방관보 게재 이후 60일간 의견을 받는 절차를 앞두고 있습니다. 두 제안 모두 아직 확정된 규칙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사기 및 시세조종 방지 규정은 예외 없이 계속 적용된다는 점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원칙이라는 사실을 함께 기억해두시면 좋겠습니다.
암호화폐 관련 사업을 준비하거나 투자를 검토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이번 제안이 확정되기까지 남은 시간 동안 관련 공시 요건과 자격 요건, 그리고 안전항 조건을 미리 점검해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이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법률 자문이나 투자 권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실제 의사결정 이전에는 반드시 변호사나 관련 전문가와의 상담을 거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