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해외 은행들이 리플의 블록체인 인프라를 속속 도입하며 국경간 결제 및 송금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해외로 돈을 보내 본 경험이 있으신 분이라면 아실 텐데요, 은행 송금이 도착하기까지 며칠씩 걸리고 수수료도 만만치 않다는 점은 오랫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이 오래된 관행에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블록체인 기반 금융 인프라 기업 리플(Ripple)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리플이 은행에 제공하는 솔루션의 구조부터, 한국 금융기관들의 실제 도입 사례, 그리고 해외 주요 은행들의 활용 현황까지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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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간 결제 및 송금의 한계를 리플이 재편성
전통적인 해외 송금은 SWIFT 망을 통해 여러 중개 은행을 거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자금이 실제로 이동하는 데 보통 며칠이 걸리고, 각 중개 은행마다 수수료가 붙습니다. 게다가 은행들은 해외 결제를 위해 상대국 은행 계좌에 미리 자금을 예치해 두어야 하는데, 이를 노스트로 계좌라고 부릅니다. 이 예치금은 이자를 거의 낳지 못한 채 묶여 있는 자본이라, 은행 입장에서는 숨겨진 기회비용이나 다름없습니다.
리플은 이런 구조를 정면으로 겨냥합니다. 리플 페이먼츠라는 결제 인프라를 통해 사전 예치 없이도 몇 초에서 몇 분 안에, 24시간 연중무휴로 결제를 완료하는 방식을 제공합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기존의 T+2, 즉 거래 후 이틀이 걸리던 정산 방식을 T+0, 즉 즉시 정산으로 바꾸는 시도라고 설명합니다.
리플의 사업 영역
리플의 사업 영역은 단순히 송금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기관 고객의 디지털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수탁 서비스, 채권이나 펀드 같은 전통 금융 자산을 블록체인 토큰으로 발행하고 관리하는 토큰화 서비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규제 요건에 맞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컴플라이언스 기능까지 하나의 플랫폼 안에 묶어 제공합니다. 전 세계 75개 이상의 지역에서 규제 승인을 이미 확보했다는 점도 은행 입장에서는 직접 인프라를 구축하는 대신 리플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힙니다.
한국 전통 금융의 리플 도입
2026년 들어 한국의 주요 금융기관들이 잇따라 리플과 손을 잡았습니다. 각 기관이 리플을 도입한 이유와 활용 영역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 특히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국내 대표 해외송금 핀테크 기업들이었습니다. 센트비, 한패스, 와이어바알리 세 회사는 일찍이 리플넷에 합류해 동남아시아 등지로의 소액 송금 속도와 비용을 개선하는 데 활용해 왔습니다. 다만 이는 비교적 오래전에 이루어진 파트너십이라는 점을 참고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2026년 4월 15일에는 교보생명이 리플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발표했습니다. 리플이 국내 보험사와 맺은 첫 사례로, 리플 커스터디를 기반으로 국채를 토큰화하고 실시간에 가까운 결제 구조를 검증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기존 국채 거래는 체결과 정산이 분리되어 보통 이틀 이상 걸리는데, 블록체인 위에서는 거래와 정산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현재는 테스트넷 단계에서 기술적 타당성과 규제 적합성을 함께 검토하고 있습니다.
같은 해 4월 27일에는 케이뱅크가 합류했습니다. 한국 최초의 인터넷 전문은행이자 업비트의 독점 금융 파트너인 케이뱅크는 리플의 SaaS 기반 디지털 지갑인 팰리세이드를 활용해 기관용 지갑 인프라를 구축하는 한편, 아랍에미리트와 태국을 대상으로 한 온체인 해외송금 기술검증을 2단계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습니다. 1단계에서는 자체 지갑을, 2단계에서는 팰리세이드를 사용해 규제 준수와 확장성을 동시에 시험하는 구조입니다. 다만 이 역시 아직 실제 상용 서비스로 이어지지는 않은, 개념검증 단계라는 점은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2026년 8월 18일, 전북은행이 국내 지역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리플 페이먼츠 도입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리플의 아시아태평양 총괄 피오나 머레이와 전북은행 박춘원 은행장이 나란히 언급한 이 파트너십은 수출입 기업, IT 스타트업, 온라인 콘텐츠 제작자 등 글로벌 비즈니스 고객을 대상으로 한 해외송금 서비스를 목표로 합니다. 다만 발표 시점 기준으로 결제에 XRP를 사용할지, 리플의 스테이블코인 RLUSD를 사용할지, 아니면 법정화폐 기반 결제망을 그대로 활용할지는 공개되지 않았고, 구체적인 서비스 개시일이나 수수료 구조, 지원 국가 범위도 아직 발표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렇게 보면 한국 금융권의 리플 도입은 수탁(교보생명), 지갑 인프라(케이뱅크), 결제(전북은행)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하나의 흐름으로 읽힙니다.
리플, 해외 은행들의 국경간 결제 파트너십
해외로 눈을 돌리면 리플의 파트너십은 훨씬 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SBI 홀딩스가 이끄는 SBI 리플 아시아가 미쓰비시 UFJ, 미쓰이 스미토모, 미즈호 등 일본 3대 메가뱅크를 포함한 60여 개 은행 컨소시엄을 구성해 오랜 기간 블록체인 기반 송금을 시험하고 실제 운영까지 이어왔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결제 허브 기업인 트랑글로가 리플의 유동성 솔루션을 활용해 역내 실시간 송금망을 운영하고 있고, 니움과 노바티 같은 글로벌 결제 플랫폼 기업들 역시 사전 예치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리플 인프라를 도입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인도의 인두스인드 은행도 해외에서 인도로 들어오는 대규모 송금 물량을 리플넷을 통해 처리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유럽에서 리플과 손잡은 대표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스페인 산탄데르 은행의 원페이FX는 2018년에 출시된 서비스로, 당시 리플의 엑스커런트라는 메시징 솔루션을 활용한 것이었습니다. 산탄데르가 이후 대중용으로 내놓은 자매 서비스 파고FX는 애초에 리플 기술을 쓰지 않았고, 이마저도 2021년 말 서비스를 종료했습니다. 원페이FX 자체가 지금까지 그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는 최신 자료로 명확히 확인되지 않으므로, 이 사례는 리플의 초기 은행권 진출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이해하시되 현재 시점의 운영 여부와는 구분해서 보시는 것이 정확합니다.
리플 국경간 결재 및 송금의 남은 물음표
정리하고 보면 국경간 결제 및 송금 분야에서 리플의 확장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다만 발표된 파트너십 대부분이 아직 개념 검증이나 파일럿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 그리고 실제 결제에 어떤 자산이 쓰이는지 공개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점은 함께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케이뱅크나 교보생명의 경우처럼, 실제 자금 이동은 XRP가 아니라 RLUSD 같은 스테이블코인 방식으로 처리되는 사례가 최근 흐름에서는 더 흔하게 관찰됩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자체 인프라를 구축하는 대신 이미 검증된 라이선스와 네트워크를 가진 리플을 선택함으로써 시간과 비용을 아끼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이용자 입장에서는 파트너십 발표와 실제 서비스 상용화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각 은행의 공식 채널을 통해 서비스 개시 여부를 확인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