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과 핀테크 기업의 스테이블코인 활용

글로벌 금융기관과 핀테크 기업의 스테이블코인 활용이 국경 없는 송금·결제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 2026년 들어 국경을 넘나드는 자금 이동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은행 영업시간과 시차, 여러 중개은행을 거치며 발생하는 지연과 수수료는 오랫동안 국제 송금과 무역의 걸림돌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1년 사이, 전통 금융의 최상위 플레이어들이 잇따라 스테이블코인을 자사 인프라에 결합하기 시작했습니다. 19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송금 기업부터 글로벌 카드 네트워크, 유럽의 다중 통화 핀테크, 그리고 국내 인터넷은행까지, 업권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맥킨지(McKinsey)와 아르테미스 애널리틱스(Artemis Analytics)의 추산에 따르면 2025년 실제 상거래 목적으로 이뤄진 스테이블코인 결제 규모는 약 3,90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더 이상 암호화폐 투자자들만의 영역이 아니라, 실물 경제의 자금 흐름 속으로 편입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이 글에서는 최근 공개된 주요 사례들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이 실제로 국제 송금·결제 인프라에 어떻게 접목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왜 지금 금융기관들이 스테이블코인에 주목하는가

스테이블코인은 특정 법정화폐(주로 미국 달러)의 가치에 고정되도록 설계된 디지털 자산입니다. 발행사는 코인 발행량만큼의 현금, 국채 등 자산을 준비금으로 보유하며, 이를 통해 가격 안정성을 유지합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스테이블코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지점에서 기존 금융 인프라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 은행 영업시간이나 주말과 무관하게 24시간 자금 이동이 가능합니다.
  • 여러 중개은행을 거치는 전통적인 국제송금(코레스뱅킹) 구조를 단축할 수 있습니다.
  • 은행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에서도 인터넷 접속만으로 자금을 수취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실제 상거래 현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을 그대로 사용하기는 어렵습니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거나 공과금을 낼 때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받아주는 곳은 아직 드물기 때문입니다. 결국 관건은 스테이블코인의 속도와 효율성을, 기존 금융 시스템의 신뢰성 및 사용 편의성과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아래에서 살펴볼 사례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접점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웨스턴유니온: 175년 송금 기업의 스테이블코인 전환

1851년 설립돼 175년의 업력을 지닌 웨스턴유니온은 스테이블코인을 위협이 아닌 기회로 규정하며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데빈 맥그래너핸(Devin McGranahan)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스테이블코인이 국경 간 송금 속도를 높이고, 스테이블코인을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법정화폐로 전환해 주며, 자국 통화가 불안정한 국가의 고객들에게 새로운 가치 저장 수단을 제공할 수 있는 세 가지 기회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구상은 실제 상품으로 이어졌습니다. 웨스턴유니온은 미국 국법은행인 앵커리지 디지털뱅크(Anchorage Digital Bank)가 솔라나 블록체인 위에서 발행하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USDPT’를 선보였습니다. 이어 스테이블코인 결제 인프라 기업 레인(Rain)과 손잡고 ‘스테이블카드(Stablecard)’라는 디지털 지갑 겸 비자 카드를 출시했는데, 이는 37개국에서 우선 서비스를 시작해 2026년 말까지 60개 이상 지역으로 확대될 예정입니다. 이용자는 해외 송금을 USDPT 잔액으로 직접 수취하고, 애플페이·구글페이에 등록한 카드로 전 세계 비자 가맹점 및 ATM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발표가 유럽 디지털뱅킹 서비스 종료 결정 직후 이뤄졌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웨스턴유니온이 자체 은행업을 직접 운영하는 방식 대신, 규제받는 전문 파트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에 참여하는 쪽으로 전략을 재편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비자(Visa)와 제로해시: 기업 재무 영역으로 확장되는 스테이블코인

195개국 이상, 180억 개 이상의 카드·계좌·디지털지갑 접점을 연결하는 비자의 실시간 송금망 ‘비자 다이렉트(Visa Direct)’ 역시 스테이블코인 기능을 순차적으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2026년 1월 비브이엔케이(BVNK)와의 파일럿을 시작으로, 7월에는 은행과 핀테크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보관·이체할 수 있는 ‘비자 스테이블코인 플랫폼’을 공개했으며, 이달에는 온체인 인프라 기업 제로해시(zerohash)와의 협력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제로해시 파트너십의 핵심은 기업 고객이 USDC, 페이팔USD(PYUSD) 등 스테이블코인으로 비자 다이렉트 계좌를 미리 충전(프리펀딩)하고, 수취인에게는 스테이블코인 또는 법정화폐 중 원하는 방식으로 즉시 지급할 수 있게 하는 데 있습니다. 비자 측은 이를 통해 은행 마감 시간이나 주말과 무관하게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고, 자금을 미리 많이 쌓아둘 필요 없이 필요한 시점에 근접해 충전할 수 있어 자본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특히 해외 프리랜서·크리에이터에게 보수를 지급하는 플랫폼, 재난 지역에 구호자금을 전달해야 하는 국제기구, 그리고 은행 인프라가 취약한 국가로 송금을 보내는 리밋턴스 사업자들에게 실질적인 효용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Neo와 Triple-A: 기업이 지갑을 몰라도 되는 스테이블코인 수금

유럽의 다중 통화 재무관리 핀테크 네오(Neo)는 스테이블코인 결제 전문기업 트리플에이(Triple-A)와 독점 파트너십을 맺고, 기업들이 디지털 자산을 직접 보관·관리하지 않고도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습니다.

이 협력의 특징은 ‘수금하는 기업’의 관점에서 문제를 풀었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많은 기업들이 스테이블코인 결제 도입을 주저해 온 이유는 디지털 자산 커스터디, 자금세탁방지 등 컴플라이언스, 외부 지갑 운영이라는 복잡성 때문이었습니다. 이번 통합을 통해 트리플에이의 스테이블코인 인프라가 네오 플랫폼에 내장되면서, 고객이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한 대금은 자동으로 현지 통화로 환전돼 네오의 아이반(IBAN) 계좌, 스위프트·세파 연결망, 24개 이상 통화 환전 기능과 함께 하나의 재무관리 워크플로우 안에서 처리됩니다.

로랑 데스쿠 네오 대표는 이번 협력이 디지털 자산 결제와 전통 금융 인프라를 실용적이고 규제 준수적인 방식으로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고 밝혔으며, 에릭 바르비에 트리플에이 대표는 국경 간 거래에 의존하는 기업들 사이에서 스테이블코인의 속도와 투명성에 대한 실질적인 수요가 확인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케이뱅크, 스테이블코인으로 해외송금 인프라 구축

지금까지 살펴본 사례가 대부분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전개됐다면, 국내 인터넷은행 케이뱅크의 행보는 조금 다른 결을 보여줍니다. 케이뱅크는 한국과 유럽 은행권이 공동 추진하는 스테이블코인 협력 프로젝트 ‘판게아(Pangea)’에 참여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프로젝트에는 유럽연합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추진 법인 키발리스(Qivalis), 국제 금융 메시징망 스위프트(SWIFT), 블록체인 상호운용성 기업 체인링크(Chainlink)가 함께 참여하며, 원화(KRW) 스테이블코인과 유로화(EUR)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교환하는 구조를 연구·검증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는 지난해 한국과 일본 금융기관이 함께 진행한 ‘팍스 프로젝트(Project Pax)’의 후속으로, 협력 범위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확대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닙니다.

동시에 케이뱅크는 블록체인 기업 리플(Ripple)과도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해외송금 기술검증을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1차 검증에서는 자체 개발 방식으로 디지털 지갑을 구현했고, 현재 진행 중인 2차 검증에서는 리플의 SaaS 기반 디지털 월렛 ‘팰리세이드(Palisade)’를 활용해 아랍에미리트·태국 등을 대상으로 중개은행을 거치지 않는 온체인 송금 방식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태국 카시콘뱅크, UAE 체인저(Changer.ae), 홍콩 비피엠지·해시키그룹 등과도 개별적으로 업무협약을 맺으며 국가별 송금 노선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케이뱅크는 올해 초 기업공개(IPO)로 확보한 자금 약 2,450억 원 가운데 약 100억 원을 스테이블코인 시스템과 기관투자가 디지털자산 거래 인프라 구축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정식으로 상용화되려면 발행 주체와 고객 자금 보호 방식 등을 규정하는 법제화가 선행돼야 합니다. 즉 케이뱅크가 현재 진행 중인 여러 프로젝트는 법적 기반이 마련되는 즉시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도록, 기술 검증과 해외 파트너십을 미리 다져두는 준비 단계에 가깝습니다.

 

네 가지 사례를 관통하는 흐름

웨스턴유니온, 비자, 네오, 케이뱅크의 사례는 각기 다른 업권과 지역에서 출발했지만, 공통된 방향성을 보여줍니다.

  • 스테이블코인은 그 자체로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기존 금융 인프라와 결합해 속도와 접근성을 보완하는 레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 개인 소비자를 겨냥한 서비스(웨스턴유니온 스테이블카드)와, 기업 재무·수금을 겨냥한 서비스(비자 다이렉트, 네오)가 동시에 발전하고 있습니다.
  • 대부분의 사업자는 규제받는 발행사·인프라 파트너와 협업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커스터디와 컴플라이언스 부담을 줄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 달러 중심으로 출발했던 스테이블코인 논의가, 원화·유로화 등 자국 통화 기반 모델로 점차 확장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넘어야 할 과제도 분명합니다. 국가별로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준비금 관리,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제화 수준이 다르고, 규제 공백이 있는 상태에서는 상용 서비스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케이뱅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많은 금융기관들이 기술 검증(PoC) 단계에 머물러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마치며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논의는 이제 ‘암호화폐 시장의 일부’를 넘어, 국제 송금과 기업 재무관리라는 실물 경제의 핵심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175년 역사의 송금 기업부터 글로벌 카드사, 유럽 핀테크, 국내 인터넷은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흐름에 올라타고 있다는 점은, 스테이블코인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금융 인프라의 구조적인 변화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관련 법제화와 규제 정비가 어떤 속도로 이뤄지느냐에 따라, 앞으로 몇 년 사이 실제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로 이어질지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전자 삼성월렛 스테이블코인 도입

한국은행 원화 스테이블코인, 은행 중심 발행 선언

149개 기업이 참여한 스테이블코인 OUSD

SEC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완화, 암호화폐 새로운 기회

모건스탠리 암호화폐 현물거래 전면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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